
제주살이 10년째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평소엔 TV를 잘 보지 않아서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나 연예인 맛집 이런 데는 잘 모른다. 그런데 최근, 지인에게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 나온 카페 가봤어?”라는 말을 들었다. 못 봤다고 하니 다들 놀라더라. 드라마는 아직 못 봤지만, 궁금한 마음에 그 촬영지라는 허니문하우스에 다녀왔다.
예전 파라다이스 호텔, 지금은 허니문하우스


서귀포 구도심 바닷가 쪽, 한때 ‘파라다이스 호텔’이란 이름으로 사랑받던 리조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대부분의 건물은 문을 닫았고, 일부만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래된 산책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리조트 건물 사이로 난 길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정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상하게 낭만적이다.
마치 오래된 동화 속 궁전처럼



산책로 끝, 가장 바닷가에 자리한 건물이 허니문하우스 카페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시간을 거슬러 들어온 느낌이 든다. 유럽풍 건물과 한국식 대들보 같은 천장 구조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져 있다. 오래됐지만 무너진 게 아니라, 시간이 덧입혀진 것 같은 공간.


창밖으로는 제주 바다와 섶섬이 보인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보면, 문득 예전 이곳이 신혼부부들의 허니문 장소였다는 이야기가 실감난다. 그 시절, 설렘을 안고 이곳에 도착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조용하지만, 묘하게 인기 있는 카페
보통 ‘핫플’이라 하면 젊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 같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중장년층 손님들이 많고, 대화도 조용하다. 그런 분위기가 오히려 이 공간과 더 잘 어울린다. 진짜 제주 같은 느낌.
가격은 다소 높은 편이지만, 이 뷰와 이 공간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호텔에서 커피 마신다 생각하면 괜찮은 수준. 메뉴판을 보며 괜히 ‘예전엔 이곳이 레스토랑이었겠지’ 싶은 상상을 해본다.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밖으로 나서니,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주상절리 위로 떨어지는 해, 멀리 보이는 섶섬, 바다 냄새와 시원한 바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제주에서 수많은 노을을 봐왔지만, 이곳에서 본 노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주변 여행지와 함께 즐기기 좋은 곳
허니문하우스는 정방폭포, 새연교, 쇠소깍, 외돌개, 서귀포올레시장 등 서귀포 대표 여행지들과 가까워 잠시 들르기에 딱 좋은 위치다. 걷는 걸 좋아한다면, 올레길을 따라 허니문하우스로 향하는 코스도 추천하고 싶다.
여행을 다녀와 집에 돌아온 후에도, 허니문하우스의 그 오래된 정원과 창밖 풍경이 종종 떠오른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는 곳.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마음 한 켠에 담아둘 만한 카페다.